1, 화포위주 해전 메타는 이순신이 정립했다?
실제로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구사한 화력으로 원거리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전술은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주력전술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당시는 그냥 배 붙여서 백병전으로 패는게 정석이었기 때문.
그러나, 알다시피 조선의 화포 개발과 판옥선의 화포 장착이 이순신의 작품인 것은 절대 아니고 이미 고려 말에 왜구를 때려잡기위해 화포가 발전되었으며, 이순신은 뉴메타인 화포를 적극 활용한 전술의 실용성을 입증하고 그 교리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2, 이순신은 정보전에 능했다.
이순신의 전략전술 수립에 가장 도움이 됐던 것중 하나가 압도적인 정보력이다. 이순신은 항상 전투 이전에 적이 언제 어디서 공격할지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 근방 해역의 물살같은 것도 꿰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정보 수집 -> 이길 방법 궁리 -> 이김. 이 과정의 반복이라는 기가막힌 능력이 보여주었다.
특히, 그냥 이길거같다고 싸우는게 아니라 이겨도 전술적 가치가 그닥없고 아군 피해만 클 것 같다고 판단되면 전투하지 않았고 심리전에도 능통하여 "적의 습성상 슬슬 기습할때가 됐다 싶어서 대비시켜 놨더니 진짜 기습하더라." 라는 일화도 있을 정도다.
3. 필사즉생 필생즉사 연설은 희생을 강요하는 말이다?
명량해전 직전, 이미 병사들이고 장성들이고 전의를 거의 상실하고 도망칠 궁리나 하고 있을때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라는 연설을 해서 사기를 북돋은 일화가 유명하다. 언뜻 말을 들으면 그냥 "이 새끼 마냥 우리가 절대적으로 열세한 상황이나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으니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여기서 나라를 위해 죽어다오." 라는 식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다.
근데 사실 그 연설 내용이 "죽더라도 싸우다가 죽자." 가 아니라 "씨발 내가 이길 방법 다 생각해왔는데 튈 생각하고 있냐. 나만 믿고 다같이 훈련한 대로 따라오면 이기니까 도망칠 생각하지 마라. 여기까지 와서 나를 못 믿나?" 와 같은 뉘앙스라고 보는게 맞다.
4. 명량해전때 처음에는 이순신만 싸웠다
이미 영화 명량으로 인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전투 초반에는 적의 규모를 보고 13척 중 이순신의 대장선 단 한 척만 빼고 전부 뒤에서 전투를 관망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평소에는 군기를 중요하게 여겨서 매우 엄하게 다스렸는데도 불구하고 13 대 133은 시발 아무리 봐도 아닌거 같다고 생각하여 다같이 이순신 죽는거 구경이나 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이에 굴하지 않고 혼자서 울돌목을 틀어막는 기적의 블로킹을 선보이며 중군영하기와 초호기를 걸어서 도움핑을 존나 찍자
"아니 이게 되네." 하면서 장수들이 허겁지겁 도우러 갔다고 한다. 사실 다른 장수가 이딴 전력차로 싸우자고 했으면 이미 다 도망가고 아무도 안 남았겠지만 '근데 진짜 이순신이라면?' 이라는 생각으로 뒤에서 지켜보기라도 한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5. 이순신 최대의 위협은 전염병?
조선 최고의 명장도 피해갈 수 없었던게 병사들의 전염병이다. 그 시대 군대가 늘상 그렇듯 비전투손실이 전투손실 이상이었는데,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는 이순신의 특성상 그 피해의 비중이 매우 컸다.
당시 충무공 휘하 장병들의 사망 원인 2위가 전염병(약 2500명)일 정도. 실제로 임진왜란 전체에서 이순신이 이끈 조선수군의 전체 전사자 수는 400~500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렇게 보면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전염병으로 군의 규모가 크게 줄어들자 새로운 수군을 구하려고 정말 힘들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
참고로 충무공의 병사 사망원인 1위는 원균이다. (약 17000명)